Inncer Child | 존박(John Park)
2013. 뮤직팜/로엔엔터테인먼트
고민의 흔적
데뷔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완숙미가 인상적이다 못해 다소 의아할 정도였던 [Knock]의 수록곡들, “왜 그럴까”와 “그 노래”가 전해준 잔향이 아직 남아 있다. 미니멀한 편성의 피아노 혹은 기타 위로 유영하던, 오랜만에 만나는 “자기 목소리를 가진” 세련미에 소름이 돋았던 건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터. 심지어 "Falling"에서는 근 몇 년간 국내외 어느 쪽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독특한 팔세토 톤을 구사하며 그의 음역대에 대한 우려를 가졌던 이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쥐어짜는 고음이나 서커스적인 테크닉 없이도 스토리를 풍부하게 전개시키는 능력의 비범함, 나에게 그의 데뷔는 무엇보다도 훌륭한 보컬리스트의 발견 그 자체였다.
문제는 그 예외적인 보컬 컨트롤이 어떤 의미에서는 보폭을 좁히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점. 다소 어덜트 컨템포러리에 가깝게 설정된 (아마도 멘토인 김동률의 전반적인 프로듀싱에서 유래했을) 차분한 톤도 그 자체로 문제는 없었지만 혹시 너무 이른건 아닐까도 생각했다. 기성 가수 그 누구와 견주어도 딱히 모자랄 것이 없는 아 ‘완성된’ 톤은 질리지 않고 어떻게 더 변주할 수 있을까? [Inner Child]를 켜며 내 관심은 그곳에 머문다.
섬세한 보컬톤보다는 리듬감에 의도적인 방점이 찍힌 두 곡 “Imagine"과 ”Baby"이 연이어 귀를 두드리면 불안했던 마음이 일소된다. 전작에서 힌트도 주지 않던 acid 계열의 funk와 컨템포러리 알앤비를 앞세워 정면돌파, 동어반복의 우려를 일단 가뿐히 걷어낸다. 상쾌하다. 타이틀로 내세운 “Baby"는 이미 90년대 내내 소위 ”뮤지션“들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 건드려봤던 편곡이지만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그루브를 가지고 논 보컬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곡들에서 그의 목소리는 소위 해외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들려준 ‘맥락일탈’의 낯설음이나 국내파들이 종종 맞닥뜨린 어정쩡함의 경계를 좋은 의미에서 넘나들고 있다. 한국에서 듣기 힘든 독특한 톤이지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은 미덕이다.
이적은 그렇다고 쳐도 이상순이나 이승열, 심지어 정원영의 이름을 존 박의 앨범에서 만나다니 우선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나니 그 나름대로 수긍이 간다. 장르와 스타일, 편곡의 지향점은 제각각이지만 존 박의 보컬이 가진 최대의 미덕인 ‘관용성’ 안에서 제법 위화감 없이 엮여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물론 기교는 흠잡을데 없다. "Too Late“를 예로 들면 엄연히 록적인 지향속에서도 소울에 기반한 유연한 발성을 무기로 멜로디에 따라 톤의 다채로운 변화를 통해 묘한 공간감을 이끌어 내는데 이는 카피캣 보컬리스트들과는 다른 차원의 보컬이다. 전작에 비해서도 확실히 능숙해져있다.
“Right Here"에서 느껴지는 조금은 촌스러운 90년대 뉴잭의 뉘앙스, 리듬이 완전히 배제된 채 메시지의 투명한 감수성에 오롯이 집중한 정원영의 ”어디있나요“는 곡 그 자체가 아닌 앨범 전체의 일관성만을 고려했을 때는 어느 정도의 불협이라 지적할 만한데, 그래서인지 후반부와 보너스 트랙으로 밀려 있는(?) 일련의 자작곡들은 오히려 존 박 본연의 보컬색이 좀 더 자유롭게 발산되는 놀이터이면서 재즈와 소울에 기반을 둔 보컬리스트로서의 뚜렷한 일관성을 유지시키는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트렌디함이나 예리한 선율감은 아직 부족해보이지만 “싱어송라이터”의 자격을 위해 찔러보는 것이라고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물은 아니다.
문제는 존 박이라는 재능을 어떻게 풀어낼까 하는 숙제는 두 장의 앨범을 통해서도 아직 완전히 만족스런 답이 얻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Inner Child]는 욕심보다는 고민의 흔적이 담긴 한 장이다. 톤, 기교, 발성등 기본적인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은 지난 앨범에 비해서도 확실히 성숙했다. 그러나 장르 보컬리스트로서의 존 박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다.(물론 이것은 보컬이 아닌 프로듀싱의 영역에 더 가깝다) 몇 개의 단어로 “이런 음악”이라 정의할 만한 정도의 일관성은 여전히 부재하지만 신뢰감 있는 선배들이 그 나름의 개별적인 색을 책임지고 있는 와중에 존 박은 예의 그 탁월한 유연성과 장르 소화력으로 응수한다. 단순히 백화점 식으로 늘어놓는 다는 느낌보다는 장르와 변신, 본연의 색깔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읽힌다. 어떤 의미에서건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참여한 면면의 무게감만큼이나 공을 들여 다듬어 냈겠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없는 프로듀싱의 섬세함, 장르를 타지 않고 그 어떤 음과 리듬을 막론하고 자신의 톤으로 끌고 오는 보컬의 존재감, 더불어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한결같이 녹아나는 진지함까지. (앞으로 좀 더 유연해도 좋지 않을지?) 대중적인 성패를 떠나서 이미 그는 실패하기 어려운 커리어의 궤적에 진입중임에 분명하다. 고유한 서명을 가진 목소리라는 것은 또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부러움을 살 재능인가. 새로운 세대의 이문세나 이승환은 꼭 발라드 가수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농담을 섞어 말한 기억이 난다. 두 앨범을 통해서 드러낸 감수성이 이 정도라면, 아마도 존 박은 그 유력한 후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13.7.8.]

김영대(투째지)
toojazzy25@gmail.com
twitter: @toojazzy25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