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Deez) [Get Real] (2010)
Deez. Get Real
2010. Universal


한국 블랙뮤직은 정말 진보했을까? 

So what? 음악은, 아니 예술은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를테면 개별적인 디테일, 세부적인 양식, 전문적인 테크닉과 같은 것은 두 번째로 친다. “그래서 무얼 말하고 싶은가?” 이게 처음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예술은 결국 일시적으로 소비될 뿐이다. 트렌드나 사조는 되지 못한다. 연속성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8군에서 흑인들의 목소리와 몸짓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된 한국의 블랙뮤직, 혹은 그 비스무리한 어떤 것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90년대 이후 세부적인 테크닉과 방법론들이 철저히 모방되고 분석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된다. 물론 그 힘은 늘 외부에서 조달되었다. 한국안의 미국인 미8군-교포-유학파 등으로 이어지는 이 외부적인 힘은 결국 한국에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컨템포러리한 블랙뮤직의 기운을 이식하는 데에 기여했다.

한때는 이것도 진보였다. 김조한이나 유영진의 유려한 기교가 적어도 ‘할 수는 있다'라는 가능성을, 나얼이나 박효신의 탈-아시아적인 창법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라는 신선한 충격을 준 것만으로 굿-샷이었다. 이제 요사이의 젊은 뮤지션들은 ‘완전히 똑같이도 할 수 있다'라는 명제를 거침없이 증명해대고 있으니 이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디즈의 데뷔작을 들어보면 음악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단연 압도적인 ‘블랙함'의 홍수를 체험할 수 있다. 약간의 한국적(?)인 뉘앙스도 배제한 채 철저히 미국 네오 소울의 방법을 쫓는다. 악기 배치 하나, 브라스 톤 하나, 버스-브릿지 구성의 스타일, 하다 못해 숨소리 하나까지 맥스웰이나 디안젤로의 그것처럼 완전히 찰지고 끈적하고 검은 모든 것이 폭발하고 있다. 이것도 전에 없던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원단 그루브의 향내 “Soul Tree”나 흑인저리가라 간들어짐의 에로틱 극단 “Makin Luv”들은 분명 이제껏 Made in Korea를 찍고 나온 모든 음반들 중에 가장 검다. 형태도 정신도 태도도 전부 검다. 소위 ‘가요'의 영향을 받지 않은, 90년대 중후반의 소울과 힙합을 듣고 자란 세대들만이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뼛속까지 스민 컨템포러리한 검은색으로 염색되어있다. “Devil’s Candy”에서 대담하게 메인 멜로디로 코러스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을 들어보자. 선배 뮤지션들이 하고는 싶었지만 결국엔 하지 못했던 컨템포러리한 소울의 향내를 디즈는 디테일까지 획득하고 있다. 이것도 혁신이라면 혁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찜찜하다. 완전히 유쾌하지가 않다. 이제 누구는 또다시 “이제 다 따라잡았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쉰내나는 오래된 레파토리다. 시종일관 ‘똑같기만한' 무언가가, 자막을 켜지 않고 들으면 맥스웰인지 디즈인지 모를 이 소리들이 정말 그 길고 긴 여정,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간을 끌어온 한국형 블랙뮤직 만들기의 최종 완전체일 수 있을까? 정말로? 

맥락의 문제도 있다. 네오-소울은 복고주의와 힙합이 만나면서 형체가 다듬어졌다. 60년대의 정신과 00년대의 테크놀로지, 훵크와 재즈를 베이스로 삼는다. 하지만 디즈의 네오-소울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걸까. 어떤 것을 복고하고, 어떤 것을 베이스로 삼아야 하는걸까. 

누구는 그저 컨템포러리일뿐이라 말한다. 컨템포러리한 시대에, 글로벌한 세상에,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관에서 그저 같은 걸 공유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모순이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우리가 한국인의 국적을 가진, 흑인들이 만든 것과도 얼핏 전혀 다르지 않은, 아예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음악에 굳이 따로 떼어내 찬사를 보내야 하는 까닭이 있긴 있는 걸까. 한국의 대중 음악을 듣는다는 것, 그 음악을 지지한다는 것, 발전과 진보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 될까.

확실히 이러한 질문들은 난해하다. 어떻게 보면 선문답 같이 허무하다. 자의든 타의든 글로벌한 음악 문화에서 숨쉬고 있는 우리에게 블랙뮤직은 무엇인지, 서구형 대중음악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야무지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어쩌라고? 누구나 다른 답을 갖고 있기에 속시원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더구나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답을 궁리해야 한다. 우리가 듣는게 삼성의 TV나 현대의 자동차와 같은 수출품이 아닌 ‘예술’이라면 적어도 이 답은 분명히 얻어야 한다. 언제까지 “똑같아"라는 말로만 흡족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거창하게 말해 한국의 블랙뮤직은 올해 출시된 Deez나 Jinbo의 앨범들에 이르면서 비로소 한 싸이클을 완성해 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연주-보컬-작곡-편곡-디테일-태도 어느 면에도 이제는 본토의 무엇에 뒤지지 않을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도 분명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So What? 그것이 진짜 우리 음악의 ‘진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진짜 진보하고자 한다면 “So What”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기왕에 컨템포러리한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이제는 한발 늦은 스타일의 모방과 맹목적인 사운드의 추종만으로 만족치 말고 그 나름의 트렌드를 리드할 수 있는 안목과 방향성을 제시해 내야 할 때다. 서구의 음악을 소스(source)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들은 늘 무언가를 ‘제시할까' 그것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에서 컨템포러리의 다음 키워드가 나올수는 없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소위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사는 자들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한다. 

디즈의 [Get Real]은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앨범이다. 귀를 의심케 만드는, 국적을 확인케 만드는 블랙함의 홍수다. 형태를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캐취하고 대범한 대중음악으로써 완성해 냈다. 그것은 그대로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하지만 이 앨범이 한국형 블랙뮤직의 새로운 한 사이클로 넘어가는 진보의 첫 걸음이 될지, 아니면 또다시 반복되는 강박적인 미국 사운드 추종의 루프로만 남을지 그건 아직 더 지켜보고 싶다.  그래서 조금은 찜찜하다. 그때까지는 아직이다. (7/8/2010)



김영대(toojazzy@naver.com)
Ethnomusicologist / Music Critic
음악취향Y

*원문은 웹진 음악취향Y에 기고되어 있습니다.
by toojazzy | 2010/07/09 12:48 | 트랙백 | 덧글(0) |
베란다 프로젝트 『Day Off』 (2010)
베란다 프로젝트 / Day Off
뮤직팜. 2010


"귀향'에 이어 "잔향"으로 이미 김동률은 그 어떤 한 지점에 올라섰다. 알고 배운 모든 코드 진행과, 궁리하고 터득해 온 모든 편곡 실력과, 부릴 수 있는 멋도 다 부려봤다. 그가 존경해 온 끌라우디오 발리오니나 윤상의 감수성과 호소력마저 능가하는, 클래시컬한 발라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내공이 그 곡을 정점으로 산화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힘을 빼기다. 하지만 힘을 빼는건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힘을 빼는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다음의 스윙을 위한 예비동작에 불과하다. 그것이 강타이던 연타이건 간에 일단 힘을 뺌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준비다. [Monologue](2008)가 그랬다. 그것만으로는 완벽치 않지만 다음의 스윙을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는 담고 있던 순간. 

이상순은 누구보다도 개방적인 마인드의 기타리스트다. 기타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배움의 열의와 더불어 쉽게 갖추기 힘든 음악에 대한 개방적인 시선도 갖고 있는,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다재다능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면? 이를테면 힘을 빼고 다음을 모색하려는 김동률에게 새로운 경로와 접근방법을 같이 고민해줄 가장 적합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 이상순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현실은 그 이상이다. 

뭔가 뻔한듯 귀가 쉽게 반응하지만 억지스러운 답답함이 없이 매끈하게 선율을 풀어내는 "Bike Riding"과 "어쩐지"가 기본적인 톤을 셋업하면, 한편으로는 이상순의 미니멀한 기타가 완벽한 한 여름 오후의 느긋함을 그려내는 "벌써 해가 지네"의 미묘함이 한 축으로, "기필코"의 직선적이면서 명료한 선율의 움직임이 또 한축으로 절묘한 균형을 맞춰댄다. 역시나 김동률의 주특기인 벅찬 달림과 전매특허 스트링으로 수를 놓는 완벽한 미니 드라마 "Train"이 속도를 내더니만, 이상순의 몽환적인 어프로치 "단꿈"이 앨범 전체에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으면서 톤을 다운시켜 서로의 빈틈을 절묘히 메워낸다. 협연 앨범이 가진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감성. 자전거, 이국, 오후, 느긋함, 여행, 기차, 무료함, 한적함, 꽃, 그리고 휴식. 디카대신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모던함이 아닌 나무가 삐걱대는 낭만이, 더우면 냉차에 비스듬히 누워 맞는 잔잔한 바람으로 만족스러울듯한 일상의 사치스러움이 모여 풍부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가진 유려함에 완전히 호응한다. 
무엇보다도 저 탁월한 선율감. 김동률이 예전처럼 피아노의 규칙적인 코드진행만으로 상투적인 멜로디를 뽑아내지 않고 그 대신 이상순의 기타, 그 톤이 자아내는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통해 다양한 느낌을 그려낸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랄 것 없이 어느 곡에던 서로의 장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과거 어떤날의 음악에서나 들을 수 있던, 서로 다른 둘의 감성이 드러내는 교묘한 어울림이 데자부처럼 스쳐갈 정도다. 

김동률의 경로변경은 불과 두장만에 완전히 성취되었다. 목소리만 빼고 모든 부분에 힘을 완전히 뺀 채 자연스러운 스윙궤도만으로 멋진 타구를 만들어 낸것이다. 이상순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더없이 훌륭하게 증명해 냈다. 김동률의 후속작만큼이나 이상순의 솔로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 (06/10/2010)



김영대(투째지)
웹진 음악취향Y
toojazzy.egloos.com
by toojazzy | 2010/06/14 23:36 | MusicY Critique | 트랙백 | 덧글(0) |
쓴 것들. (updated)
단행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2006, 한울) / 신승렬.김영대.박찬우.오준환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 (2008, 한울) / 김영대, 김봉현, 윤호준, 조일동, 최지호, 이상현
힙합, 우리시대의 클래식 (2009, 한울) / 김영대, 김봉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음반리뷰) (2008, 선) / 대표편집 박준흠 외 공저
모든 대중음악의 역사(가제) (2011, 한울, 작업중) / 김영대

프로젝트
사이버 음악 시상식 "MMA(Muse Music Awards)" (1996-2000, 나우누리 Muse)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999, Sub)
한국 대중음악 명반선, 음악취향 Best 100 (2007, 음악취향 Y)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단행본/연재물 (2007, 가슴/경향신문)
한국 대중음악 2000-2009 베스트 50 (2010, 음악취향Y)
한국 헤비니스 베스트 50+5선 (2010, 음악취향Y)

번역서
The Hip Hop Wars (Tricia Rose) (2011, 한울, 작업중) / 김영대, 김봉현 (공역)
 
기타 연재물, 조각글들
"Genre N Style" (나우누리 Dope Soundz)
"알앤비란 무엇인가?" (나우누리 Dope Soundz)
한국의 명반 50 (웹진 The Sea)
한국의 댄스 음악사 (웹진 The Sea)
by toojazzy | 2010/06/01 14:08 | Footprint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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