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다운30(Lowdown30) 『1』


로다운30(Lowdown30)

『1』



음악을 만들며, 혹은 음악을 논하며 범하게 되는 오류는 그 본질을 장르라는 명사에 가두려 한다는 것이다. 록이니 팝이니 블루스니 힙합이니 하는 식으로 음악을 장르로 대표되는 명사의 세계 안에 가둬놓고 그 안에 관습처럼 얽매여 버리는 일은 만드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고질병처럼 있는 일. 하지만 원래 음악은 스타일이라는 형용사적인 세계를 탐구함으로 얻어진다. 장르라는 것도 결국 형용사다. 힙합이 있는 게 아니라 힙합적인 비트의 방법론이 있는 것이며 소울이 있는 게 아니라 소울풀한 창법과 발성이 존재한다. 록이 있는 게 아니라 록적인 것으로 감지되는 어떤 밴드플레이의 구조가 있다. 클래식이나 재즈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적인 작곡 스타일과 재즈적인 즉흥성이 담보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그러한 형용사적인 전제에서 구체적인 테크닉이 구현된다. 이 곡을 어떤 스타일의 비트로 풀어내느냐, 어떤 스타일의 톤의 베이스로 연주하느냐, 어떤 스타일의 변박을 적용시키느냐, 어떤 공간감의 사운드를 창출해 내기 위해 어떤 스타일의 소리들을 선택해 쓸 것이냐 하는 지점에서 음악의 본질적 성격이 결정된다. 누군가가 임의적으로 이름지운 장르와 관계없이 성격과 방향성이 닮은, 비슷한 스타일군의 음악과 뮤지션들이 존재하는 것, 그들을 가로질러 취향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블루스가 알앤비와 록앤롤을 낳고 거기서 소울과 훵크가 나오는 이유도 같다.


두 번째 정규작에 “1”이라는 숫자를 보란 듯 끄집어낸 노골적인 상징의 총체를 음미하며 받은 신선한 충격은, 이들은 위에 열거 해놓은, 형용사로 접근하는 스타일 본위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단 잠깐만 시간을 돌이켜보자. 전작 『JAIRA』를 지배한 스타일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사운드의 폭과 두께였다. ‘블루스 록’이라는 (여전히 그 실체가 모호한) 큰 장르적 범주를 상정해 놓고 그 안에서 3인조 라인업이라는 실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직적접인 편성을 통해 파괴력 있는 밴드 사운드의 최대치를 뽑아내겠다는 것이 아마도 그 목표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 성과는 일정부분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불거져 나온다. 바로 그 “블루스-3인조-사운드의 두께와 폭”이라는 일견 제약적인 프레임 덕분에 윤병주의 다양한 취향이나 그것을 반영하는 작곡능력이나 밴드가 가진 다양한 리듬의 변용, 비규범적인 사운드의 활용과 탐구 등을 다채로이 시도해 볼 공간이 위축되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결국 키워드를 매개로한 전방위적인 음악적 시도가 그 3인조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 음악의 반경 안에 묶여버렸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충실한 스타일의 이해, 묵직한 사운드만큼이나 조금은 건조하고도 심각한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는 점은 역시 앨범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주기가 망설여졌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곡 “말도 안돼”의 소울풀한 베이스 라인이 일단 전개되고 나면 이 같은 답답함은 일순간에 해소된다. 이건 하나의 실마리다. 단순히 다른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다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음이 암시된다. 가만. 이어지는 “아스팔트”의 기타와 베이스 역시 “블루지한” 록 사운드의 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대신 훵크 스타일의 톤, 록/힙합의 크로스 오버를 떠올리게 만드는 다양한 장치들, 이를테면 오토튠(?)에 걸러진 뒤틀린 보컬, 충실히 백비트를 울리는 드럼과의 싱코페이션등을 통해 내재된 그루브를 증폭시킨다. 설마. “플라스틱에 로모듈”은 프린스나 이후 레니 크라비츠가 추종했던 60년대 록의 탐구, 소위 레트로라고 하는 흐름의 재현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앞의 두 곡을 생각한다면 그 의도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블루지한 기타를 들으며 록키즘(rockism)에 근거한 뿌리를 운운할지도 모르지만 악곡의 구성이나 베이스의 코드웍, 보컬의 공간감에서는 차라리 두왑시절의 보컬 알앤비를 직감하게 되는 “처연”에 이르면 비로소 그 큰 그림의 정체가 드러난다. 블루스 록의 정통성따위는 사실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두터운 3인조 사운드의 강박 같은 것은 전혀 배제된 채 블루노트에 기반을 둔 통일감 있는 작곡방식, 기타와 리듬섹션이 주고받는 엇박의 깊이가 대신 목격되는 것이다. 장르의 이름만으로 음악을 재단하려는 시도를 비꼬는 듯한, 왠지 뜨끔하면서도 모던한 제스처다. 블루스에서 소울과 하드록을 넘어가는, 60-70년대에 이룩된 블루스 계통의 성과들이 콜라주처럼 교차한다.


한편으로는 단순히 편곡이나 스타일의 차용 이전에 작법에서부터 의도된 문제다. “너의 조각”의 변칙적 톤의 전환. 헨드릭스와 제플린이 교차하는 와중에서 관찰되는 건 특정 장르의 단절적인 탐구라기보다는 같은 계보를 공유한 음악들에 공통된 작법 패턴을 적용해 내려 한다는 점이다. “노을”의 싸이키델릭이 장르적 싸이키델릭이 아니라 전체적인 코드와 악곡의 구조에서 파생되는 방법론이라는 근거한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 “거리의 먼지처럼”의 편곡 방식에서 네오 소울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사실 이건 장르 그 자체에 대한 탐구랑은 무관한 하나의 방향성에서 풀어야 한다. 이건 윤병주, 혹은 로다운30이 왜 굳이 블루스에 지속적으로 천착하는 가와도 일맥상통한 문제다. 굳이 연결을 짓자면 모든 음악에서 본인들 고유의 하드록 에너지를 찾고자 한 제플린, 모든 음악을 자양분삼아 훵키함의 요체를 추적하고 있는 프린스와 같은 결이다. 윤병주는 애초에는 하드록에서, 다시 블루스로 거슬러 그 다음엔 알앤비로, 록적인 방법론에서 다시금 소울의 톤으로, 또 다시 훵키의 뉘앙스를 동시에 가로지르며 그 안에 면면히 흐르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음악의 그루브가 품은 DNA를 쫓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한국 블랙뮤직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디즈가 『Get Real』에서 들려준 본토 음악에 대한 사운드의 횡적인 탐구과 치열한 이식, 그 지점을 윤병주는 보다 종적인 관점에서 거슬러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테크닉이나 장치만으로 환시시키는 얕은 단계의 장르의 추종도, 유명한 곡 몇 개를 샘플로 접근하는 카피적 마인드도 없다. 블루스에서 길게 뻗어 나온, 혹은 그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작법들과 테크닉을 오롯이 시연하되, 그 면면을 가로지르는 기본적인 정수가 변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다양한 노력. 과거의 방법론과 현대의 기술을 쉼 없이 오가며 앨범아티스들만이 부릴 수 있는 각종 장치들, 이펙터나 편곡의 재미를 끊임없이 발견해 내는 미묘한 뮤지션쉽은 덤이다. 무엇보다 개별적인 다양한 시도의 밑바탕에, 수준 높은 작곡능력과 연주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개 장르주의 카피 밴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고유성이 체험된다.


윤병주와 로다운30이 새롭게 써내려가는, “그루브함”을 매개로한 블루스와 소울, 하드록과 훵크에 이르는 리듬의 뮤지콜로지musicology. 나는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김영대(투째지)

Musicologist / Music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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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jazzy | 2012/05/08 07:31 | MusicY Critique | 트랙백 | 덧글(0) |
존박(John Park) 『Knock』(2012)

John Park 『Knock』(2012)



“Falling” 멜로디를 여는  음은 뜻밖의 팔세토falsetto. 설마하지만  박은  절과 후렴까지 예의  낯선 층위의 톤으로 모든 음들을 스무드하고도 자못 완벽하게 훑어낸다수개월전 입증된 탁월한 보컬 능력을 바탕으로그리고 일분이 약간 넘는  짧은 시간만으로이미  박의  음악은 그렇게 예상외의 수를 내밀며 귀를 호사시킨다별것도 아닌  작은 장치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긴장시킬 때만이라야  존재의 가치를 얻는 예술의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그리고  뜻밖의 방향설정을 통해 나는 프로듀서의 역할과 뮤지션쉽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는다섬세한 음악성은 그렇게 아주 작은 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존박이 슈퍼스타K 통해 호평을 받은 몇몇의 퍼포먼스를 돌이켜 보면 이미 그의 장단점은 모두 드러났다고   있다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 원곡에서처럼 내지르거나 쥐어짜지 않고 부드러운 톤으로 노련하게 마무리 지을  있는 데에는 각별한 중저음에서의 메리트가 핵심재즈풍으로 편곡되었지만 그렇다고 오리지널하거나 세련되었다고 보긴 힘든 이문세의 원곡 빗속에서 가진 올드함을 제법 손쉽게 뉴욕이나 시카고 어디쯤에서 들릴법한 느낌의 곡으로 재배치 시켜놓는 이국적 매력의 바이브 역시 그의 유력한 무기다.


반면 통상적으로 주류 대중가요에서 선호되는 높고 짙은 고음역대를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본인에게혹은 프로듀서인 김동률이나 존박 스스로에게 적잖은 고민거리였을지도 모른다그런데아주 뜻밖에 해답은 바리톤 스타일의 보컬인 그가 평상시  쓰지 않던익숙치 않은 가성영역대를 탐구함으로써 찾아졌다진부한 시선으로는 결코 쉽게 얻어질  없는  나름의 센스랄까고민의 흔적이 감지된다.


단촐하기 그지없는 직선적인 선율세례 “Falling” 전해준 예상치 못한 모던함이 페이드 아웃 되기가 무섭게 건조하면서 세련된 피아노와 현의 이중주가 바톤을 이어받는다결코 가볍지 않은 재즈 코드가 제법 톤을 셋업하고 나면 생각보다도 훨씬 담담하고 정갈한 톤의 소울 보컬이 분위기를 잡아챈다. "왜 그럴까"는 신인임에도 이미 자기 색을 확고히 드러내는존박의 시그니쳐 알앤비 사운드라 부를  있을 것이다다분히 올디스들에 취향을 두고 있는 작곡자 김동률이나 편곡자 나원주의 리드덕분으로  곡은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식상한 공식을 피해 도니 하서웨이나 브라이언 맥나잇이 들려준  있는 가스펠 기반의 소울에 가까운 스타일로 마무리 되었다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저음과 매력적인 팔세토를 오르 내리며 소품 느낌의 소박한 멜로디를 자유스러운 플로우로 변주시키는 것은 보컬리스트로서 탁월한 기량이다프로듀서와 보컬리스트의 소통이 충분했다는 증거다.


사실  박이라는 아이템은 가요로서 여지가 많이 없을거라는 기우를 품었었다컴피티션 직후 보컬 트레이너이자 작곡가인 박선주가 쓰고 프로듀스한 “I’m Your Man” 듣게 되면서  불안함은 점점 실체가 드러나는  싶었다무턱대고 미국 대중음악 스타일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엔 대중성이 염려되고주류 가요의 문법을 소화하기엔  나름의 뚜렷한 약점을 보유한 목소리박선주는  지점을 스윙재즈라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장르와 방향설정으로 우회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앨범의 조타수를  김동률은 목소리의 장점은  나름대로음악적인 도전은   나름대로 욕심을 부리며 예의  특유의 도시적인그러면서도 그다지 타협적이지 않은 세련된 방법론으로  박의 목소리를 새롭게 풀어낸다. 존 박 역시 컨템포러리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다채롭게 시험하며 첫 작업 답지 않은 진지한 뮤지션쉽을 한껏 드러낸다.  정도면 실로 누구나 부러워할 좋은 만남. 그리고 처음치고는 더할나위 없이 흡족한 출발이다. (2012.3.21)




김영대 (투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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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jazzy | 2012/03/22 12:33 | MusicY Critique | 트랙백 | 덧글(3) |
Whitney Houston: The Diva
A Tribute to Whitney Houston (August 9, 1963 – February 11, 2012)
The Diva


쇼는 끝났다.

먼지 낀 목소리를 딛고 기적의 퍼포먼스로 부활, 그래미에 올라 “이 상을 주님에게, 그리고 나를 믿어준 여러분 모두에게 바칩니다” 라고 외칠 것만 같았던 거짓말 같은 한 순간은 결국 영원히 미뤄졌다. 그래미의 여왕이자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가수 중 한명인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그녀는 그래미 전야에 그렇게 세상을 뒤로 했다. 그렇게 자신의 스토리의 최종장을, 팝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열고 닫았다.

그리고 다시 또 일주일이 흘렀다.

그저 평범한 음악팬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아쉬움을 이제 뒤로하고, 그녀가 가는 길에 한명의 글쓰는 사람으로서 보낼 수 있는 한마디를 더할 차례이다. 나에게, 모두에게, 그리고 팝의 역사에 휘트니 휴스턴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대답을 위한 길지만 심각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표하는 경의의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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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규정하는, 퍼포먼스의 양식을 정의하는 여느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등장은 자못 심상치 않았다. 바야흐로 대중음악계에 새롭게 몰아닥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열풍. 그 낯설고 새로움에 매료되어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소리들을 저마다 방만하게 탐구하며 흥분에 취해있었던 시절이었다. 록 그룹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후계자로 너나 할 것 없이 일렉트로닉 댄스를 지목했고, 건조하고 기름 빠진 목소리가 소위 싱어-송라이터들의 풍성한 창법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사멸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던 디스코와 훵크funk의 리듬의 명맥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뉴웨이브 사운드가 잇고 있던 바로 그 시절, 1980년대였다.

느닷없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예상치 못한 괴물이 나타나 팝의 양식과 산업의 판도를 뒤바꾸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때마침 보수화된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교묘히 맞물려 60년대말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로 가장 심각한 불황을 맞닥뜨린 레코드 업계에 마이클 잭슨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MTV와 어덜트 라디오 스테이션을 한꺼번에 모두 아우르는 이 파격적인 문화상품에 대중들은 충격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와중에 영민한 레코드 모굴들은 이 성공가도의 면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새로운 Next Big Thing을 곧 만들어 낼 것이라 다짐하며. 그 중의 한명은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영원한 멘토,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였다.


Clive Davis: 위대한 멘토

하버드 출신의 법률가이자 사업가, 기획자인 데이비스의 귀에 “이제껏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최고의 목청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어간 것은 1980년대 초의 어느 날이었다. 가스펠의 전설 씨씨 휴스턴Cissy Houston의 딸이자 그가 이미 수퍼스타로 키워낸 알앤비의 거물 디온 워익Dionne Warwick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유명세는 파다했고 훌륭한 레코딩 아티스트로 만들어질 충분한 자격조건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이 재능의 숨겨진 매력들을 새삼 관찰하기 시작했다. 또 한명의 알앤비 스타? 그의 생각은 달랐고 결국 이전의 세대들을 수놓았던 소위 ‘소울 디바’들과는 성격이 다른, 전혀 새로운 포텐셜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확신하기에 이른다. 늘 그래왔듯 그의 판단은 너무도 정확했다.

산타나Santana, 에어로 스미스Aero Smith, 심지어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등과도 작업하며 변방의 장르 아티스트들을 모두 메인스트림 팝의 수퍼스타로 만들어내는 데에 독보적인 수완을 발휘해온 이 거장은 휘트니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도 비교적 정확히 그려내고 있었다. 가장 큰 전제는 엄마인 씨씨 휴스턴은 물론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전해준 그녀의 대모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부터 사사받은 가스펠 창법에 기반한 독보적인 발성과 바이브였다. 하지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 위에 팝의 관용성과 미려함을 덧입히는, 조금은 무모해보이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레코드 제국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역시 그 결정을 신뢰하고 지원했다.

그리로부터 다시 4년.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레사의 파워,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세련미,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의 센슈얼한 여성미가 조화롭게 겸비된 한 약관의 파릇파릇한 디바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들의 열광적 환호는 마치 준비된 것인 양 당연했다. 그렇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보물을 자신의 이력에 추가했다.


The best producers of all time: 최고의 조력자들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뼛속까지 가스펠의 기운이 스민 휘트니의 목소리를 팝의 디바로 만드는 공정에는 지난한 시간이 인내되어야만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포텐셜 덩어리인 목소리가 품은 가스펠 기반의 팝 디바라는 포맷의 전무후무함 때문이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휘트니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프리칸-어메리칸 음악의 긴 역사에 팝 발라드 풍의 알앤비나 소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저 유명한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패티 라벨Patti Labelle,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조차도 히트곡 레퍼토리에 틴 팬 앨리 스타일의 팝 발라드나 펑키한 댄스뮤직 하나쯤은 당연한 아이템처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크로스-오버 청취자 확보를 위한 당연한 마케팅 전략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인종 마켓을 넘어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흑인으로서는 유달리 우아한 톤과 매너를 가진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가 보수적인 백인청취자들 사이에서도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는 하나 음악을 잘 아는 그 누구도 교회음악에 뿌리를 둔 흑인 여가수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bra Streisand처럼 노래를 부르며 팝의 전면에 “디바”라는 포맷으로 승부를 걸어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생소한 건 음악 현장에 있는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류 팝의 대가들은 거의 대부분 휘트니와의 작업에 난색을 표했고, 퀸시 존스나 스티비 원더같은 거장 소울 뮤지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이긴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목소리를 두고 정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팝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에 대해서 반신반의한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뜻밖에 휘트니의 메인 프로듀서로 자청한 인물은 백인 뮤지션인 마이클 매서Michael Masser였다. 팝 발라드의 파퓰러한 호소력에 완벽한 목소리를 찾았다고 믿은 그는 최상의 곡들을 아낌없이 선사하며 휘트니의 데뷔를 도왔다. 조지 벤슨의 원곡을 재편곡, 잊을 수 없는 디바들의 송가anthem로 만들어 낸 “The Greatest Love of All”을 필두로, 휘트니 커리어 자체를 규정하는 팝 발라드들, “Saving All My Love For You”, “All At Once”를 1집에서, “Didn’t We Almost Have It All”를 2집에서 작업하며 모든 곡을 넘버 원 차트에 올려놓았다. 휴스턴의 전설은 분명 매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매서가 밸러디어Balladeer로서의 휴스턴의 잠재력을 깨워 냈다면, 이를 극한의 레벨로 몰아붙인 이는 다름 아닌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였다. 1992년, 휘트니의 첫 영화 주연작이자 싱어로서의 최정점을 찍은 보디가드The Bodyguard의 사운드 트랙에서 포스터는 소위 발라드 3연타라 불릴 대작들,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Run To You”를 모두 프로듀스했다. 소스도 컨츄리, 팝, 알앤비로 다양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편곡적으로도 파격적인 전조modulation와 아카펠라, 난해한 고음역대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던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스타일 뿐 아니라 80년대 스타일의 관습적인 발라드 형태를 한 단계 넘고자 했다. 소위 “파워 발라드” 불릴만한 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슬로우 넘버들은 결과적으로 차트에서의 성공을 넘어 발라드라는 음악의 새로운 작법을 환기시켰고, 이후 모든 아마추어 컴피티션에서 디바를 꿈꾸는 여가수라면 넘어야할 시험관문 같은 소스곡으로 남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이름을 알린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후 의심할 바 없는 성공가도를 이어나간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How Will I Know”와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흥겨운 비트를 비롯, 알앤비/소울을 넘어 파퓰러한 매력을 휘트니에게 덧입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은 이후 휘트니 이후 최고의 싱어라 불릴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3집 앨범의 전반을 도맡았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또 한명의 알앤비 디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을 스타로 만들었고, 데이빗 포스터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을 발굴, 결과적으로는 휘트니를 잇는 월드 스타로 안착시키며 90년대 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 이끌어 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랐거나 영감을 받았던 가수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 누구도 완전히 휘트니의 업적을 뛰어넘진 못했지만.

The Diva, and the Voice

휘트니의 독보적인 아성은 바로 그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한명의 팝 아티스트가 건드릴 수 있는 사실상 모든 결의 보컬 테크닉과 감수성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음역대나 성량으로만 순위가 가려지는 단순한 가창력의 잣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통제하고 구사하는 기술, 가사 전달 능력, 그에 더한 감성과 퍼스낼리티에 있어서도 어느 순간에건 할 것 없이 한결같은 수준을 뽐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와 매너로 청자들이 가진 보다 보편적인 감수성의 영역을 건드리면서 새로운 보컬리스트의 이미지를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You Give Good Love”나 “Saving All My Love For You”에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톤의 미세한 변화들은 쉬운 예가 될 것이다. 우아함과 파워풀함에 섬세한 전달능력을 아우른 휴스턴의 목소리는 테크니컬한 면에 치중하는 경향을 띠던 관습적인 소울 보컬들이나 지나치게 프로듀싱 테크닉 위주로 재편되어 힘이 빠져버린 당대 대부분의 팝 보컬리스트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운 흐름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 비범한 재능은 업 템포의 비트위에서도 예외 없이 그 자유로움을 뽐냈다. 블랙 바비인형같은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굵은 선의 음들을 막힘없이 훑어내리는 "How Will I Know"의 캐취한 매력은 물론이요, 선배 훵키소울 가수들의 유산을 잇는 트랙들, 이를테면 "I'm Your Baby Tonight" "Queen of the Night" "I'm Every Woman"의 두텁고 강렬한 내지름은 위대한 선배들인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샤카 칸의 아성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휘트니는 자신의 음악적 고향인 가스펠에서 가져온 호소력과 긍정성이 담긴 특유의 울림을 팝안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좋은 메세지가 담긴 노래를 전달하는 최고의 악기로서의 보컬리스트의 위상을 제고시켰다. 팝적인 편곡으로 슈거코팅되긴 했지만 자못 Spiritual한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는 “The Greatest Love of All”의 호소력 짙은 울림은 영락없는 가스펠의 현대적 변형이다. 조지 벤슨George Benson을 비롯, 이미 몇몇 가수에 의해 녹음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탐구되지 않은 멜로디의 파워와 호소력을 새삼 이끌어 낸 것도 전적으로 그녀의 탁월한 역량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기억이 새삼스러운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One Moment In Time”이나 애초에 가스펠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포 탑스The Four Tops의 원곡인 “I Believe in You and Me”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예쁜 멜로디를 아름답게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강하고 긍정적인 뉘앙스로 메시지 송이 품어야 하는 정신을 마치 영가를 부르듯 신실하게 뿜어내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경박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일면 거친 톤 마저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휘트니의 내공 앞에 팝에 경도되었다는 미디어의 손쉬운 비판은 일견 머쓱해져버리고 말았다.

자, 이제 이 시리즈의 극적인 완결판으로 각종 미디어들이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1991년 수퍼볼 미국 국가Star Spanggled Banner 공연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점잖게 빼입고 나와 거룩한 표정으로 고음만을 자랑하는데 급급했던 진부한 트렌드를 거부, 그 대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단에 올라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그네들의 애국심을 일깨웠다. 그 뒤로 수퍼볼 미국국가 퍼포먼스의 보컬 편곡 방식이 휘트니 버전으로 일괄 통일되었음은 물론이다. 실력 있는 가수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또 하나의 검증 관문처럼 말이다. 저 위대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우드스탁Woodstock의 미국국가 연주를 통해 반항적인 록 스피릿의 한 순간을 시연했다면, 휘트니야말로 팝의 화신으로서, 알앤비의 총아로서 자신의 위상의 절정을 맘껏 내지른 한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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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하지만 떠난 뒤에야 새삼스레 자명해지는 몇 가지 진실들이 있다. 생각해보자.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그의 오랜 독재체제하에서 발견해 낸 반짝이는 재능이 휘트니 한명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휴스턴이 들려준 똑같은 마법을 재생해 내지 못했다.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란 그 어떤 디바도, 마이클 매서나 마이클 월든의 그 어떤 아름다운 멜로디도, 데이빗 포스터나 베이비페이스의 그 어떤 천재적인 프로듀싱과 음악적 꼼수도 휘트니의 독보적 위상에 어렵사리 비교될 한순간정도를 겨우 허락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보컬리스트의 미학적 정수고 존재이유가 아닐까. 지독한 프로페셔널리즘, 자로 잰 듯 한 영민한 기획력, 실험적이고 난해한 그 어떤 새로운 음악적인 발명과 발견들도 쉽게 복제해내거나 범접하지 못하는 그 목소리와 그 울림 그 자체. 이제 더 이상의 구차한 찬사는 무의미하다.

또 한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한 개의 그래미 트로피도, 또 한 장의 플래티넘 레코드도, 팝 디바의 위대한 전설도 이제는 거짓말 같이 시간에 가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도 보편적인 매력을 선사했던 한명의 가수가 남긴 울림은 그 진폭을 더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녀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 감동적인 그 한 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새로운 팝 디바의 전설을 꿈꾸며 목소리를 담금질 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또 계속되어야만 한다. (2012. 2. 19)

김영대(toojazzy)
Musicologist / Music Critic
by toojazzy | 2012/02/20 13:00 | MusicY Critique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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