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5B single [Cluster Vol.1]
2007 / 만월당
까만옷과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스티븐 잡스의 손에 들려진 새로운 아이팟을 보며 많은이들이 열광하고 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쉽고 저렇게 이쁘고 저렇게 새로운 것이 가능할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탁월한 신기술을 너무도 편리한 유저 인터페이스안에 녹여내는 기술,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쁜 디자인속에 포장해 내는 마법같은 하나의 상품에 열광해 본 사람은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볼때마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것은 스필버그와 잡스가 나에게 준 교훈이기도 하다. '아티스트쉽은 장사꾼이 만든 상품안에도 역시나 존재한다'
가요라는 카테고리로 옮겨 와 보면 아이팟을 연상시키는 음악인들이 있다. 전혀 어렵지 않게 귀에 들어오는 유저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예상치 못한 곳에 숨겨져 있는 특별한 기능들, 그리고 언제든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킬 수 있는 독창적인 디자인. 아마 팝/발라드 계열에서 그에 가장 합당한 뮤지션을 한명만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정석원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그의 음악은 매우 친숙하다. 가끔은 의도적이다 싶을만큼 상투적이고 평범한 진행으로 포문을 열때가 많다. 그러다가 그 평범한듯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숨겨진 독특한 신기능들이 슬쩍 슬쩍 고개를 들이밀더니 급기야 나중에 가서는 상상조차 못할만큼 막강한 요소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대부분의 경우 그 테크닉의 난이도는 높은데다가 독자적인 공정을 따르고 있어서 그것을 따라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예의 전체적인 디자인 역시 자신의 이름을 새긴듯 독창적으로 빛이 난다.
그것을 증명하는 두 곡이 [Cluster Vol.1] 이라는 015B의 새 싱글에 수록되어 있다. 이미 그들의 10년만의 컴백이자 재기작인 [Lucky 7]에서 매니아들이 요구한 '심오한 작가주의 컨셉'을 외면하고 '여전히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대중작곡가'의 길을 선택한 정석원 답게 이번 싱글 역시 그 노선을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한다. 저주받은 걸작보다는 사랑받는 상품을 만들겠다. 하지만 그 기술과 품질은 반드시 보증한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미 평범한 발라드로는 성이 안차는듯 김형중의 목소리를 앞세운 '받은만큼만 해주기'에서 그의 전매특허가 모두 발휘된다. 평범한 도입, 미묘한 보이싱과 템포의 변화, 그리고 작심한듯 폭발하는 편곡의 다이내믹함. 최근의 발라드가 verse를 평범하게 반복하고 지루하고 뻔한 브릿지를 배치한 후 창법한 변화시킨 지루한 후렴의 반복을 택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뭇 색다른 맛이 난다. 발라드계의 아이팟 나노 정석원의 작품답다.
이어지는 'r we happy'도 똑같은 의도가 나타나지만 바로 015B와 정석원의 의도는 이런것이 아닐까. 지나간건 지나간거다. 우리는 컨템포러리로 승부한다. 둘러치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하게는 가지 않겠다. 오현란-치열이라는 라인업도 라인업이지만 요 몇년사이의 그 어느 알앤비 듀엣곡에도 뒤지지 않는 간결하면서도 전형적인, 그러면서도 허를 찌르는 멜로디 라인은 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어느 대중가요작곡가의 곡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쌔끈하다.
80 년대 중반에 전성기를 누린 팝의 거장 데이빗 포스터는 90년대에도 셀린디온과 토니 브랙스톤이라는 뮤지션을 거물로 재탄생시키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또한 2000년대를 넘어서도 이제는 마이클 부블레와 같은 색다른 영역의 팝음악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과연 팝아티스트로서 그의 끝없는 음악적 깊이를 웅변한다.
그렇다면 정석원은? 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2000년대에 박정현이라는 가수를 거물로 재탄생시키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고, 다시금 2000년 말(벌써?) 새로운 음악, 그것도 전형적인 최신가요와 같은 형태를 앞세워 멈추지 않는 열정을 발휘하고 있다.
어떤면에서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부분이기도 하다. 한때 그와 비슷한 대접을 받았거나 또는 그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졌다고 칭해지던 동시대의 뮤지션들이 지금은 대부분 창작의 기력을 소진해 버린 것은 누구나가 알고있는 바일테고, 그나마 남은 몇몇조차도 자신만의 틀에 갇혀 대중들과 괴리된 방법론을 택하고 있는 것도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 가운데 아직도 변함없는 실력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싶어하고, 녹슬지 않은 감각으로 대중들에게 최신기술이 담긴 상품을 팔고 싶어하는 뮤지션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투째지 / 200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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