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환 『Dreamizer』
드림팩토리. 2010
...한번쯤은 이렇게도 듣고 싶었다.
가장 쉬운건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김구라식으로 한마디 거드는 것이다. "아, "천일동안" 이후로 도대체 히트곡이 뭐가 있습니까? 당부? 세가지 소원? 내가 모르는데 무슨 히트곡이야, 이거 왜 이래!!" 그게 너무 경박하다 싶으면 조금 더 살을 붙여 "이승환의 음반들은 5집 이후로 사실상 내리막길을 걸었지요" 라고 하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더 말을 꼬아 "결국 [Cycle]이후의 이승환, 정확히는 [The War In Life]이후의 이승환은 뭔가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는 동시에 대중적인 매력은 감퇴해 가는 듯 합니다"라고 쉬크하게 내뱉는것도 있다. 모두 다 단순명료해서 좋다. 하지만 어느 방식을 표현하건 이건 이승환을 잘은 모르는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던질 수 있는 댓글수준의 감상에 불과하다.
사실 저 내용들이 환기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히트곡이 없다는건 일종의 팩트라면 팩트고 인기의 정점을 찍은 뮤지션의 내리막이라면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런 수순이다. 다만 문제는 그 속내다. 그가 6집이후 한결같이 이루어낸 음악적 성과들을 단순히 흥행이 안되었다, 예전만 못하다는 식으로 일축하기에는 지나친 단순화가 아닌가하는 점이다. 그러면 뭐가 있을까. 뭐를 좀 더 끄집어 내면 덜 허무할려나. 이승환 본인은 그게 사운드라고 웅변한다. 사운드, 그리고 레코딩. 이승환이 십년을 하루같이 주장하고, 돈 쓰고, 또 부르짖어 온 바로 그것. 사실 일반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승환의 소위 "내리막길"과 그가 '드팩'이라는 공고한 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소위 '극강의 사운드'를 위해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이는 시점은 큰 격차가 없이 일치한다. 그 뿐인가? 레코딩 아티스트로서의 이승환이 들려주는 음악세계와는 별개로, 퍼포머 이승환의 독보적인 아성이 구축되는 시기도 대충 그 즈음이다.
이승환 본인이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 달을 한번 쳐다보자. 그 달은 소리다. 사운드다. 그런데 그 소리, 뭐가 그리 다른걸까? 그런데 정작 시작해놓고 보니 뭔가 애매하다. 사운드라... 단어 자체가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자못 쿨해보이긴 하나 이게 마치 선문답과 같이 느껴져 난감하다. "어때요? 사운드 좋지요?" "예, 정말 좋던데요" 끝. 그 이상이 없다. 뭔가 구체성이 결여된다. 사실 이승환이 말하고 있는 '사운드'와 대중들이 이해하는 '음질'의 개념이 같은 건지도 우선 의심스럽다. 레코딩 사운드의 탁월함을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곡-녹음-믹싱-마스터링등이 결과물인 디스크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통의 대중들이 이해하는 좋은 사운드란 "소리가 크고, 음 분리가 좋고, 베이스가 빵빵한" 정도를 의미하지 않는가? 과연 그것이 이승환이 소위 '가진 것 모두를 투자해 뽑았'다는 그 '사운드'랑 같은 개념인걸까? 사운드에 대한 이해의 애매함이 가져다주는 미묘한 소통의 오류는 여기 [Dreamizer]에서도 다시금 반복된다.
먼저 귀가 찾는 것은 소리의 디테일보다는 당연히 선율 그 자체. "곡은 좋을 수도 안좋을 수도 있지만 사운드만큼은 언제든 최상의 것을 뽑고 싶다"는게 그의 철학(?)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이승환-황성제 라인이 들려줄 수 있는 거의 모든 레파토리, 소리나 편곡의 층위들이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이번에도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단순히 멜로디에 관해서라면 이승환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똑같은 사람이 만드는 음악의 선율들이 언제든 그렇게 똑같은 감동의 크기를 품을 수는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누구나가 극찬하는 3집에서 6집에 이르는 그 기가막힌 선율감의 정점은 솔직히 완연한 전성기에 이르렀던 김동률, 김광진, 정석원, 유희열이라는 사기적인 라인업으로만이 건드릴 수 있는 마지막 경지였을 것이다. 정지찬의 "반의 반", 권순관의 "완벽한 추억"(과연 현재 한국 최고의 멜로디 메이커다), 이규호의 "Reason"도 그 나름의 빛을 발하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박정현과의 근작을 통해 솔로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분출시키는데에는 2프로가 부족하다는 걸 확인시킨 황성제와의 콤비 역시 이번에도 비슷한 크기의 아쉬움만을 남긴다. 하지만 누차 강조해온 '최상의 사운드', 과연 그 의도야말로 정체되지 않고 진보하고 있는걸까? 그리고 그것을 대중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에 나의 관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밑져야 본전. 연습삼아 그럼 좀 더 사운드 지향적으로 앨범을 바라보자.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보컬 톤의 두께와 질감이다. 발라드나 미디엄 템포의 곡들에서도 충분히 그 진가가 나타나긴 하지만 록 트랙들이야말로 이 미묘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단순히 음량 레벨이 높다거나 보컬 밸런스가 도드라져 시쳇말로 '튄다'라고 표현되는 것과는 어느정도 구별된다. 조금은 과도한 다이나믹 레인지를 통해 전해지는 섬세한 톤("반의 반")이나 훵키한 트랙에서 악기들이 제각기 뚜렷한 존재감으로 시원스럽게 리듬을 때려대는 스타일은("이별 기술자", "A/S") 어느정도 익숙해진 이승환식 레코딩 작법의 한 축일 터. 다만 하드한 록 음악, 특히 스케일이 크고 속도감 있게 몰아가는 합주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날세우는 보컬의 '에지'감 같은 것은 외국의 레코딩에 비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이유를 단지 목소리의 소프트함만으로 돌리기에는 영 개운치 않은 뒷맛이 있었는데 [Dreamizer]를 들으면 그 기분이 일소된다. 최근의 레코딩 작업을 통해 뭔가 새로운 노하우를 캐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의 폭이 감지된다. 이를테면 전작 "Rewind"에 비교해 들으면 흥미로울, 한결 튼실해진 록 보컬과 기타의 날카로움은("단독전쟁" "개미혁명") 분명 앨범간의 편곡적 차이나 연주자들의 실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심한 변화다.
작곡이라는 개념에서는 비록 아쉬움을 주었지만 황성제의 멀티한 재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돋보인다. 예전에 마이클 잭슨의 레코딩 테크닉에 대한 부분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말한적이 있지만 사실상 현대 레코딩의 상당수는 이미 믹싱단계, 혹은 편곡의 완성도에서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경우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음질은 음색의 다른 이름이며 엔지니어가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애당초 충분히 재단되어 배치되지 않은, 즉 프로듀싱의 단계에서부터 잘못그려진 그림이 순전히 마스터링 테크닉만으로 절묘히 포샵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 드팩의 또 다른 축이며 이승환의 오랜 파트너인 황성제답게 그가 직접 손을 댄 일련의 곡들, "단독전쟁"이나 "구식사랑"등은 그 어느 영미팝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밸런스감 넘치는 편곡의 컨셉을 자랑한다. 그 역동성만큼은 녹음단계와 최상의 마무리를 거쳐 귀에 생생히 전해진다. 단순히 후반작업만의 문제가 아닌 밑그림에서부터 잠재된 성과다.
사실 구조에 컨텐츠마저 잡는다면 어느 경우에도 별 다섯개. 명작이란 그런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곡, 구성, 편곡, 레코딩 모든 부분에서 기존의 것들을 넘어서는 강렬한 무언가를 제시해내지 못한다면 소위 '명반'들과의 비교내지 상대적인 평가절하는 어느정도 불가피하다. 누구도 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고 [Dreamizer]의 운명도 결국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승환이라는 뮤지션이 가지는 독특한 위상과 의도만큼은 조금 더 그 의미를 인정 받아야 한다. 무려 열장. 그 중에 쭉정이라고 말할만한 앨범이 단 한장이 없고, 그 앨범 각각이 들려주는 소위 '웰메이드'한 질감이라는 것이 단순히 투입된 물량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와 같은 시기를 수놓은 발라드 혹은 팝/록 계열의 뮤지션중 소리와 완성도에 관한한 그의 경쟁자는 레전드 조용필 단 한 명 뿐이다. 이승환은 조용필과는 또 다른 의미의 현대적 솔로 아티스트, 프로듀서 지향의 싱어송 라이터로서 메인스트림 솔로 남자가수가 들려줄 수 있는 사실상의 모든 영역을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커리어의 가장 큰 부분이 예의 침범불가능한 사운드의 영역임을 [Dreamizer]는 다시금 확인시킨다. 이 점은 일단 의심의 여지가 없다. (5/30/2010, 김영대)
김영대(toojazzy/투째지)
음악취향Y




덧글
이렇게 된 바에야 이승환이 완전하게 지금까지 해 왔던 음악을 완벽하게 벗어난 脫DF, 脫이승환적 음악을 하거나...아니면 장사익 옹 처럼 나간다거나....아니면 무슨 인더스트리얼을 건드리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이승환이 다시 대중 or 평단에게 광범위한 찬사를 받을 일은 많이 없지 않을까 싶긴 하네요.
그런게 씁쓸하긴 한데 이 아저씨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거 한다니 그냥 따라갈수밖에. 어헝헝↗
제 기억에는 이승환이 평단에게 광범위한 찬사를 받은 적은 없지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조명한것도 제가 쓴 "90년대를 빛낸 명반50"이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구요.
어쨌든 이승환은 이승환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기상천회하고 어마어마한 것을 들고 나오는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예전 김광진/정석원/유희열처럼 한 시대를 주무르는 명파트너를 만나 현대적이고도 고급스러운 음반을 계속 내주길 바래요. 이번 앨범을 들으니 권순관이 역시 이승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던데 기대가 됩니다.
이번 앨범,
곡도 전반적으로 괜찮고, 특히 녹음적으로는 정말 좋은 앨범이었습니다. 유닛이 터져버릴듯 음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네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요.
참 잘 쓴 글이네요.
환옹 잘 됐으면 좋겠어요...